티스토리 뷰

문화/시

10월_기형도

달도시 2018. 2. 18. 17:22
반응형

10월

기형도

 

1

흩어진 그림자들, 모두

한곳으로 모이는

그 어두운 정오의 숲속으로

이따금 나는 한 개 짧은 그림자가 되어

천천히 걸어 들어간다

쉽게 조용해지는 나의 빈 손바닥 위에 가을은

둥글고 단단한 공기를 쥐어줄 뿐

그리고 나는 잠깐 동안 그것을 만져볼 뿐이다

나무들은 언제나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작은 이파리들을 떨구지만

나의 희망은 이미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너무 어두워지면 모든 추억들은

갑자기 거칠어진다

내 뒤에 있는 캄캄하고 필연적인 힘들에 쫓기며

나는 내 침묵의 심지를 조금 낮춘다

공중의 나뭇잎 수효만큼 검은

옷을 입은 햇빛들 속에서 나는

곰곰이 내 어두움을 생각한다, 어디선가 길다란 연기들이 날아와

희미한 언덕을 만든다, 빠짐없이 되살아나는

내 젊은 날의 저녁들 때문이다

 

한때 절망이 내 삶의 전부였던 적이 있었다

그 절망의 내용조차 잊어버린 지금

나는 내 삶의 일부분도 알지 못한다

이미 대지의 맛에 익숙해진 나뭇잎들은

내 초라한 위기의 발목 근처로 어지럽게 떨어진다

오오, 그리운 생각들이란 얼마나 죽음의 편에 서 있는가

그러나 내 사랑하는 시월의 숲은

아무런 잘못도 없다

 

2

자고 일어나면 머리맡의 촛불은 이미 없어지고

하얗고 딱딱한 옷을 입은 빈 병만 우두커니 나를 쳐다본다

 


 

어두워지면 거칠어지는 추억들 때문에 잠들기전 시간이 어쩔때는 너무 괴로운 순간들이 있었다.

빠짐없이 되살아났던 아픈 기억들 때문이다.

절망이 전부일거 같았던 때가 있었던거 같은데 시간이 흘러 웃기도 하고 여러 기억이 쌓여 지금은 그 감정이 희미해졌으니, 정말 나는 내 삶의 일부분도 알지 못하는게 맞는거같다.

반응형

'문화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깊은 물_도종환  (0) 2018.08.01
노을_기형도  (0) 2018.02.26
오래된 서적_기형도  (0) 2018.02.20
식목제_기형도  (0) 2018.02.19
바람은 그대 쪽으로_기형도  (0) 2018.02.18
댓글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