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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를 많이 하는 편이 아닌데, 시집은 굉장히 좋아한다. 처음에는 짧아서 좋았고, 이후부터는 함축된 표현과 단어들이 주는 그 맛에 폭 빠져버렸다. 좋은 시가 있으면 몇번을 읽고 되뇌이고 그러다보니 날씨가 좋은날이나 좋은 풍경을 보게되면 시가 떠오르기도 했다.
그래도 스스로 시를 많이 알거나 이해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서, 내가 이해할 수 있으면서도 좋다고 느끼는 시를 찾는건 쉽지않았다. 그러다가 도서관에서 책장에 꽂힌 책을 보다가 우연히 너무 좋은 시집을 알게 되어서 추천하려고 한다. 바로 문학동네시인선 107 이수정 시집, 나는 네 번 태어난 기억이 있다.
이미지 출처 : 교보문고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게 느꼈던 시 5편 중(더 많지만 추려서) 일부 구절만 적어놓으려 한다.
1. 어떤 저녁
벗어둔 옷이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묻어온 시선들 때문이리라
털어도 떨어지지 않는,
옮아온 말들이 증식하고 있지만,
옷걸이에 걸어둔다
옷장 속에는 그런 옷들이 많다
2. 구름 먹는 밤
두꺼운 책을 읽어
밤이 높아지면
창가에 걸터앉아
모르는 별들을 그리워하였다
그리움은 새하얀 구름되어
밤새 떠돌았다
잠들지 못하는 그리움 하나를 심어
흙을 덮고
손도장을 꾹, 꾹 찍어주었다.
지척의 별
하나둘 소등하고
구름 무리 오래전에 떠나갔지만,
푸르고 높은 밤이면
흙에 귀를 대고 묻곤 했다
3. 연필
순백의 중심에 서고 싶다
한 줄기 검은 광맥을 찾아
깎아낸다
물결치는 기억을
깎아낸다
투명한 정신에 닿을 때까지
들러붙은 때를 떼어낸다
목소리를 내려면
숨겨둔 그늘을 내놓아야 한다
4. 가방
집에 가면
가방을 열어보지 않고
잠자리에 든다
아침이면
그 가방을 들고 나선다
미련하기 때문이다
가방 속 어둠만큼의 미련을
늘
짊어지고 다닌다
미련은 무겁고 긴 그림자를 가졌다
그 그림자를 출력한 종이로 가방을 채우고
들고 다니느라 어깨가 기운다
5. 양파
유리로 차단된 방안에
서성대는 너를 냉장고에서 꺼내고 싶다.
까도 까도 속을 보이지 않는 너를
이제 그만 야채 더미 속에서 꺼내고 싶다.
영상 4도의 야채 칸에서
냉장된 꿈을 꾸며
썩지 않는 숨만 쉬는 너.
맵고 독한 맛으로
남의 눈물만 질금거리게 하는 너
냉장고 속의 너를 꺼내고 싶다.
밖으로 속마음을 펼치며
검은 반점으로 서서히 썩어가는 너를
보고싶다.
이 외에도 벼루, 음지식물, 시간의 띠를 뒤집어 추억에 붙여놓은 건 누구인가, 성에, 슬픔은 얼마나 부드러운가, 겨울 강, 난곡 등등 좋은 시들이 너무 많았던 문학동네 시인선 이수정 작가님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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