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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잊고지냈던 것. 나는 혼자 시간 보내는걸 참 좋아하는 사람이였다.
기분 좋았던 어느날의 기록이다. 아침을 일찍 시작해서 기분이 좋았다. 채혈하러 나온김에 오랜만에 혼자 시간을 보내야 되겠다 생각했다. 전날까지 겨울의 여운으로 매섭게 추웠는데 그날 아침에는 하늘도 파랗고 공기도 꽤 맑았고 따뜻했다. 살짝 느껴지는 공기의 찬기가 기분좋게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마을버스를 기다리는 시간부터 기분이 좋았다. 항상 그 마을버스를 기다리면 꽤 오래 기다렸는데 이번에는 정말 일찍왔다. 버스에 올라타고 보통은 자리에 앉기전부터 출발하는 버스때문에 몸이 흔들리기 마련이였는데, 그날은 내가 자리를 잡고 앉고나서야 출발하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버스의 흔들림에 따라 내 몸도 흔들리고 창밖을 보며 가는데 날씨가 정말 맑고 하늘은 파랬는데, 아직 오전 10시도 안된 시간을 보니 더 기분이 좋아졌다. 휴일 하루를 일찍 시작하는건 정말 기분좋은 일이다. 채혈하고 점심먹을 곳도 마음속으로 이미 정한 상태였기 때문에 어딜가야될까 고민하는 일도 없었다. 버스에서 내려서 익숙한 길들을 지나서 병원에 도착했다. 사람이 없어서 번호표를 뽑자마자 들어가서 채혈을 하게됐다. 예전 피를 엄청나게 못뽑는 분이 채혈했을때의 기억이 있어서 채혈할때마다 매번 두려움에 떨었지만 그날은 피도 안아프게 뽑아주셨다. 채혈을 하고 혼자 옷가지와 가방을 챙겨들고 나올때, 휑한 채혈실 앞 대기의자에 혼자 앉아있을때 잠깐 외로움 비슷한 감정을 느꼈지만 그래도 계획과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는 하루에 외로움보다 더 큰 안정감을 느끼고있었다. 계획대로 채혈을 마치고 나는 가려고 했던 브런치카페로 향했다. 이른시간이여도 주말이기에 사람이 많지 않을까했지만 혼자 식사를 즐기기에 민망하지 않을정도로 한산하고 몇몇 테이블만 차있어서 다행이다 생각했다. 직원에게 "주문은 여기서 하는건가요?"라고 물었는데, 샌드위치 만들던 직원이 퉁명스럽게 돌아보며 "네"라고 대답해서 잠시 기분이 상했었다. 그래도 무사히 주문을 마치고 계산을 하고 자리를 잡아 앉아있으니 곧 직원이 주문한 파니니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가져다 주었다. 다행히 음식은 맛있었고 포만감과 함께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혼자 잘하고 있다, 혼자 내 시간을 잘 보내고 있다는 생각에 더 마음이 좋았던거 같다. 얼마전까지 사려고 마음에 두었던 케이블이 갑자기 생각나서 다 먹고 다이소에 가서 사야겠다 생각했다. 자주 가던곳이라 어디에 어떤 매장이 있는지 바로 알 수 있어서 편했다. 맛있게 점심을 먹고 매장으로 가서 사려던 케이블과 다른것도 좀 사고 나왔다. 서울숲을 갈 생각이였기 때문에 지하철역을 검색해서 이동했다.
서울숲에 도착하고 걷기 시작했다. 겨울의 끝자락이라 생각했던것보다 풍경은 더 삭막했지만 그냥 키만 커있는 나무들 사이로 파란 하늘이 걸려있어서 괜찮았다. 기운은 완연한 봄이였기에 풍경의 기온도 따스하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공원이라 그런지 역시 가족단위의 나들이객들이 많았으며 웨딩촬영을 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보통 맑은날 공원에 가면 사람들이 참 행복해보이고 평온해보인다. 그런 사람들이 뿜어내는 긍정적인 기운들 때문에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안정되는 기분이 든다. 벤치에 앉아서 핸드폰으로 이것저것 검색해보다가 챙겨나온 이어폰을 꽂고 김광석의 노래를 찾아 들으며 풍경을 보니 내가 무엇을 좋아하던 사람인지가 떠올랐다. 혼자 시간을 보내던 옛날생각도 나면서 '혼자의 두려움'이 조금씩 덜어지는거 같았다. 함께여도 좋았지만 혼자여도 좋았다. 혼자라는데에 불안하지 말아야지.
하루를 일찍 시작했기에 시간은 오후의 반도 지나지 않은 시간. 이제 무엇을 할까 생각하는데 그런 생각을 한다는게 또 기분이 좋았다. 이제 무엇을 할까... 여유로웠다. 생활도 마음도 항상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 지나다 보이는 북카페에 들어갔다. 지하라서 사람이 많은지 알 수 없었는데 다행히 자리가 많았다. 따뜻한 바닐라라떼와 함께 책 한권을 뽑아서 읽기 시작했다. 나에게 그다지 흥미로웠던 책은 아니였어서 조금만 읽다가 친구랑 연락도 하다가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왔다. 나와서 근처를 돌아다니면서 몰랐던 길들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서울숲역에서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두워지기 전에 돌아와 샤워를 마치고 나와서 또 편히 쉴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남아있다는데에 좋았다. 일찍 시작하는 휴일은 정말 선물같은 하루인거 같다. 혼자 하루를 잘 보냈다는데에 내가 기특하다. 익숙했던 생활에서 한발짝 멀어지는 준비를 비로소 한거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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